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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두려워했는가

며칠 전, 예전에 함께 일하던 CTO님과 저녁을 먹었다. 짧은 대화였는데, 꽂히는 문장이 몇 개 있었다. 돌아와서 정리해본다.

급변하는 조직에서 흔들린 마음

최근 회사는 큰 투자를 받았고, 그만큼 실적 압박이 커졌다. 한 달 반 사이 조직개편 3번, 내가 맡는 프로덕트도 3–4번 바뀌었다. 기술본부 동료들은 사업본부로 흩어졌고, 복지는 대부분 사라졌다. 유연근무제 폐지로 야간대를 다니던 동료는 난감해하기도 했다. 해를 보며 출퇴근하던 일상은 이제 추억이다.

분위기도 달라졌다. “좋은 서비스 만들자”에서 “이직 준비하자”로. 스터디와 식사 자리의 화제는 자연스레 채용 공고가 됐다. 나도 모르게 공고를 뒤적였고, 내 역량이 시장에서 통할지 비교하며 마음이 출렁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회사에서 가장 도전적인 팀에 있고, 그 일은 꽤 재밌다. 늘 골칫거리였던 병역특례 문제도 해결됐다. 감사한 상황인데도 ‘이직’이라는 단어가 불쑥 일상 한가운데에 들어왔다.

그래서 알았다. 문제는 회사가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는 내 태도였다.

내가 본 진짜 문제

돌이켜보니 문제는 세 가지였다.

  1. 동료에게 동기부여가 어렵다.
    마음이 떠난 동료에게 일을 맡기면 미안함부터 든다. 그들도, 나도 다른 곳을 보고 있으니까. 미안함은 위임을 늦추고, 속도는 떨어진다. 팀은 ‘빨리 치우기’ 모드에 갇힌다.
  2. 일에 몰입하기 어렵다.
    치우기가 문제 해결보다 앞서면 남는 것도, 배우는 것도 없다. 업무 시간에 채용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다듬는 동료들도 늘어났다. 몰입이라는 단어는 점점 멀어져갔다.
  3. 불평은 내 삶을 바꾸지 않는다.
    불만만 쌓인 팀은 스스로 동력을 잃는다. 말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투자에서 손해를 얻으면 손절하는 것처럼, 회사도 수익이 나지 않는 서비스는 구조조정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하기로 했다

  • 연차에 쫓기지 않는다.
    “5년 차면 이 정도 해야 한다” 같은 허상을 내려놓는다. 중요한 건 어디에 있었냐가 아니라 무엇을 했느냐다.
  • 할당을 처리하지 말고,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한다.
    주어진 티켓을 쳐내면 회사의 것이고, 문제를 발견해서 해결하면 내 것이 된다. 그 차이가 실력을 만든다.
  • 정체성을 먼저 선언한다.
    나는 TDD 잘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고 다닌다. 사람들은 TDD 얘기가 나오면 나를 떠올릴 것이다. 그 기대를 채우기 위해 나는 매일 공부하고 실천한다.
  • 장기 관점으로 마음을 단단히 한다.
    5년 뒤엔 어디서든 잘할 것이다. 지금은 그 과정의 일부다. 기회는 온다. 그 기회는 준비된 내가 잡는다.

나를 지탱하는 루틴

화려하진 않지만, 매일의 작은 승리를 쌓아주는 루틴들. 이게 흔들림을 막는다. 핵심은 강도보다 지속성이다.

  • 성경/기도: 아침에 정신을 깨운다. 하루의 중심을 잡는다.
  • 개발: 끊기지 않는 학습. 작은 전진을 매일.
  • 운동·글·산책·영어·회고·감사: 몸을 움직이고, 생각을 정리하고, 하루에 의미를 붙인다.

마무리: 나는 무엇을 두려워했는가

나는 변화 자체보다, 공허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나를 두려워했다. 그래서 선택했다. 불평 대신 문제 정의, 소진 대신 몰입, 불안 대신 정체성.

내 할 일은 단순하다. 의미 있는 문제를 찾고, 작게 실험하고, 끝까지 해결한다. 그런 하루가 모여, 나를 다음 자리로 데려다 줄 것이다.